성지 사진

[스크랩] 마사다1

peterpa 2008. 6. 1. 15:03

마사다는 사해 남서쪽에 우뚝 솟아있는 길이 6백미터에 폭300미터의 마름모꼴의 지형으로 천연적 요새하고 말할 수 있다,

헤롯왕은 정상 북쪽 끝 절벽부분에 계단모양의 삼층 궁전을 지었으며 저수장과 여러 개의 곡식 창고, 그리고 목욕탕 등이 있다,

 

서기 66년 유대인들은 로마제국 통치에 반대하는 반란을 일으켰고

서기 70년 8월 로마제국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하자 끝까지 항쟁하던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3년간 로마군에 항전하다 960명의 남자와 여자들과 아이들이 자결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마사다는 유대인들이 자유를 위해 죽음으로 항거할 수 밖에 없었던 비극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굳은 결의를 다짐하는 곳이다,

 

 

 

 유대인 열성당원 960명이 엘리아 잘 벤 야리르를 지도자로 하여 마사다 요새로 피신한다,

마사다를 징벌하기 위해 실바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 제 10군단이 진군한다,

그러나 마사다의 험한 지형 때문에 쉽게 함락시킬 수 없었다,

3년간의 공격 끝에 마침내 마사다의 수비벽은 무너지게 된다,

 

로마 군대는 토담을 쌓아서 마사다 요새에 접근할 수 있었다,

마사다의 수비문이 불에 타게 되자 그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 밖에 남지 않았다,

항복이냐, 죽음이냐,

마사다에서 저항하던 유대인들의 최후의 장면이 역사가 요세푸스(AD37~95)에 의해서 극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엘리아 잘은 로마군대에 항복하지 말고 자유인으로 죽자고 마지막 연설을 하였다,

그 후,

그들은 모든 소유물을 한군데 모으고 불살라 버렸다,

먼저 약자들을 가족들의 손으로 죽이고 열사람을 제비 뽑아 그들이 나머지 사람들을 죽였다,

그들은 이미 죽은 자들의 부인과 아이들을 끌어 안고 목을 내밀었다,

마지막

열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아 아홉 사람을 죽이고 최후의 마지막 한 사람도 자살하였다,

 

이곳은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마카베오 형제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요새화 되었다

그러나 이곳이 더욱 완벽한 요새지로 구축된 것은 헤롯왕 때였다,

 

오늘날 마사다에 발굴된 건물들은 대부분 이 당시에 건축한 것이다,

 

  

 

 

 

 3단계 궁전,

헤롯왕이 북쪽 끝 절벽 부분에 건설했다,

 

 

 

 

 

 

 

 

 

 

 

 

 

 

 

 

출처 : 삶
글쓴이 : 미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