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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몰리니즘과 scientia media

peterpa 2009. 4. 3. 14:28

10. 이전의 물음들과 새로운 위기들

 

- 가톨릭과 개신교 사상에 영향을 준 두 사상 노선의 발전을 살펴볼 것. 두 노선 모두 고대에까지 소급됨. 과거의 생각을 당대의 문제에 적용하되,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적용함.

 

- 간단히, 첫번째 노선-기독교신앙 내부의 문제와 씨름해썬 신학자들이 있음. 몰리나(Molina), 수아레즈(Suarez), 바니에즈(혹은 바녜즈 Banez), 아르미니우스(Arminius).

 

- 쟁점: 하나님의 주권을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인간의 책임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느냐는 문제. 이 질문 자체는 기독교의 신앙체계라는 더 광범위한 컨텍스트 안에서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문제였음. 이 문제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르네상스의 이해 때문에 더욱 첨예하게 드러나게 됨.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개념이 변하기 시작한 데 큰 원인이 있음. 인간의 진정한 독립성과 자유를 찾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긴 한데, 오히려 우상화되면서 과대평가되기 시작하고, 지나치게 확대된 자유 개념을 옹호하려고 나오기 시작함. 그렇지만, 인간의 자유 문제와 하나님의 주권의 문제 그 자체는 일찍이 초대교회와 중세 시대에도 있었던 문제임.

 

- 두번째 노선- 피로의 회의주의(피론주의)와 관련되어 있음. 기독교신앙체계 자체의 타당성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노선.

- 첫번째 노선에 대해서는, 개신교와 가톨릭 자체 안에서 응답이 있었음. 그러나 곧 그 문제는 어떠한 사상체계든 그 체계라는 것이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로 확대되어 나감. 이러한 문제의 확대는 (르네상스를 통해서) 고대의 이교적인 회의주의, 피론주의의 재발견을 통해서 나타나게 됨.

 

- 몰리나, 수아레즈, 바녜즈, 아르미니우스

- 하나님의 전능과 전지하심 시대의 대지성들을 자극. 이 두 주제는 하나님의 힘에 대한 일련의 물음들과 하나님의 아심()에 대한 일련의 문제들을 형성함. 이 양 문제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및 세계 및 인간에 대해 하나님이 맺고 있는 관계의 성격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침.

 

- 하나님을 다른 존재자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음.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전능하시다 라고 말한다면, 인간의 자유는 어떻게 되는가? 만일 하나님이 주권적 창조주시며 우주의 통치자라면, 그가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다 만들었다는 말인가? 아름다운 것과 끔찍한 악행도 만들어냈다는 말인가? 그 원인이 되고 있단 말인가? 만물이 미리 프로그램화되어 있단 말인가? 인간은 자기들이 행동을 할 때에 어떠한 선택도 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아니면 어떤 나름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인간의 행동의 자유는 그저 환상/환각일 뿐이란 말인가?

 

- 하나님이 전지하시다 라고 말할 때도 같은 문제점들이 등장하게 됨. 만일 하나님이 만물을 아신다면, 그 만물/만상이 일어나도록 유발하시기 때문에 그 사건들을 아시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것이 결정론 즉 신에 의한 결정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오직 하나님은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만을 알 뿐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만상과 제 사건들의 주관자가 아니라 구경꾼이란 말인가?

 

- 이러한 종류의 문제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음.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주의자들 사이의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논쟁, 루터와 에라스무스 사이의 의지의 속박에 대한 언쟁, 예정과 섭리의 문제에 대한 칼빈의 싸움 등등이 이에 해당함. 이 논쟁은 16세기에 가톨릭 안에서 각 수도원 종단 간의 싸움으로 불붙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신교 신학에까지 번져나가게 됨.

 

- 가톨릭 안에서는 도미니칸 수도회와 예수회 사이의 싸움. 물론 둘 다 아퀴나스를 자기들의 박사”(스승), 아리스토텔레스를 대철학자로 인정. 종교개혁 이전에 도미니꼬 수도회의 카예탄(Cajetan)이 토미즘의 부활을 이끔. 그는 피터 롬바르드의 <문장집> 대신 <신학대전>을 신학교과서로 채택한 첫 번째 신학자였음.

 

 - 예정의 문제에 대해, 아퀴나스 자신은 확고한 어거스틴 추종자였음. 그는 예정이 하나님의 은총들을 미리 보는 것이라는 어거스틴의 의견을 자기 결론의 지침으로 삼음. “예지는 예지된 대상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지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듯, 예정도 예정된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정하시는 자에게 있다.”

 

- 카예탄과 도미니꼬 수도회는 아퀴나스를 다룸에 있어서 보수적. 그러나 특히 예수회 사람들은 그런 억압을 전혀 느끼지 않았음. 특히 신적 주권의 성격을 이해함에 있어서 제약을 두지 않음.

 

- 인간의 자율성과 업적의 역할을 더 많이 인정하고 싶어하는 르네상스의 욕망에 압력을 받아, 예수회 신학자들은 수정된 토미즘을 발전시키고자 노력. 그들은 만사가 하나님에 의해서 운명론적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신적 결정론을 피하고,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에 어떤 틈을 허락하기를 원함.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버리거나 신적 예정을 배제하고 싶지도 않았음.

 

- 그리하여 새로운 접근방법이 스페인의 예수회 신부였던 루이스 드 몰리나(Luis de Molina, 1535-1600)에 의해서 개발됨. 그는 몇년에 걸쳐서, 자유의지와 은혜의 선물들, 신적 예지, 섭리, 예정, 유기의 조화(1588)에 대해 글을 씀. 몰리나의 결론: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이 그 은혜에 자유롭게 협동할 때에 유효하게 된다는 것. 동시에 몰리나는 하나님의 섭리가 사물 일반을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개별의 것도 다 다스린다고 믿었음.

 

-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섭리 및 예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조화시키기 위해, 몰리나는 스키엔찌아 메디아’(scientia media, middle knowledge, 중간지식 혹은 매개지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함. 이 용어는 후투리빌리아’(futuribilia) 아직 실존하지는 않지만 어떤 조건들이 채워지게 된다면 실재하게 될 것들/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을 가리키기 위해서 만들어낸 조어였음. 그러한 것들은 그저 가능성으로 있는 것들과 실재화하는 미래의 사건들 사이의 중간에 속한다는 것. 그러한 사건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소유하고 있는 지식의 종류는 하나님의 자연적 지식/본성적 지식(, 모든 가능한 세계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자유한 지식”(, 실재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 사이의 중간에 오는 것이라는 것.

 

- 몰리나의 이론은 하나님이 어떠한 인간의 의지라도 그 의지가 생각가능한 모든 상황의 환경 가운데서 어떻게 반응할 지를 틀림 없이 아신다는 주장. 이 지식이 만물에 대한 신적 질서지우기의 기반을 이룬다는 것. 중간 지식은 실제 연기를 하기 전에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리허설해보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음. 그런 리허설에서 적절한 상황이 주어지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수도 있고, 가룟 유다가 부인할 수도 있다는 것.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자유의지로 어떻게 반응할지를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이 미리 보았던 것을 유효하게 선택하신다는 것.

 

- 몰리니즘(Molinism, 몰리나주의)는 스페인의 예수회 신부였던 프란시스코 드 수아레즈(Francisco de Suarez), 1548-1617)에 의해서 더 발전함. 그는 합동(Congruism, 하나로 합쳐짐, 합치, 일치)이라는 사상을 도입함. 수아레즈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들을 유발시키지 않는다. 하나님의 중간지식덕분에, 하나님은 자신의 예지를 통해서 택자들이 은혜를 선용할 것임을 미리 보기 때문에 은혜를 그들에게 주어서 택자들의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 그런 은혜는 그 경우의 상황들과 합동적, 혹은 딱 들어맞으며, 택자의 자유로운 동의를 얻는다는 것. 그의 입장을 안출해내면서, 수아레즈는 전통적인 스콜라주의 글쓰기방식보다는 르네상스에 더 가까운 글쓰기를 채택함. 그러나 그들의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제기된 문제점이나 제시된 해결책은 중세 스콜라 사상의 연장이었음.

 

- 몰리니즘에 대한 스페인 도미니꼬 수도회의 적수는 도밍고 바녜즈(Domingo Banez 1528-1604)였음. 그는 엄격한 토미스트였음.

- 바녜즈는 몰리나가 신적 은혜의 권능을 인간 의지에 종속시키고 있다고 비난. 그의 견해로 볼 때, 몰리나의 스키엔찌아 메디아는 실재적으로 호응하는 실재가 없는 용어에 불과하다는 것. 바녜즈는 하나님이 만사를 미리 정하는 신적 작정들(divine decrees) 덕택에 조건적인 장래의 자유로운 행위들 포함하여 미래를 아신다고 주장. 그는 형이상학적 원리들에서부터 시작함. 제일원인이며 최초의 원동자로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 행위들의 원인이셔야 한다는 것. 바녜즈는 하나님이 모든 유한한 존재들을 그 본성에 맞는 방식으로 움직이신다고 주장함으로써 인간 자유의 실질성을 보호하고자 함. 하나님은 자유가 없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작동하게 하시고 자유를 지니고 있는 것들은 자유로운 행위자로서 행동할 때마다 자유롭게 행위하도록 작동시키신다는 것.

 

- 16세기 말에 이르러서, 도미니꼬 수도회와 예수회 사이의 이 논쟁은 아주 신랄하게 되었음. 바녜즈 추종자들은 몰리니스트들이 잘못된 형이상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비난. 그 형이상학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간의 의지에 종속시키고 있으며, 몰리나의 새로운 설인 스키엔찌아 메디아는 공허한 개념이라는 것. 몰리니스트들은 그 개념이 가정이라는 점은 인정. 그러나 그 가정이 오히려 자유로운 선택을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을 죄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도록 만드는 것으로 보이는 견해보다는 낫다는 것. 그 논쟁은 아주 첨예하게 되어 교황 클레멘트8세는 그 논쟁을 검토하기 위해서 로마에 특별 위원회를 세우기도 했음.

 

그렇게 해서 1598년과 1607년 사이에 콘그래가찌오 드 아욱실리스(Congregatio de auxilliis)가 설치됨. 그 결과는 양측을 다 인정하는 결정. 사실상 현재까지 두 입장이 일종의 냉전 상태로 공존하고 있음. 그러나 그 적대감을 줄이기 위해서, 도미니꼬회 측은 예수회들을 펠라기안주의자라고 부르지 말도록, 예수회들은 도미니꼬들을 칼빈주의자들이라고 부르지 말도록 금지령이 내려짐.

출처 : 청랑정
글쓴이 : 청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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