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민족- 유석근
한국인은 일찍이 대홍수 후 세계 구속의 여명기에 그들의 직계 선조가 ‘선택된 백성’의 조상으로 택정 받음으로 인해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이지만 이 영예로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너무나 긴 세월을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고난 받으며 자기비하 속에 살아왔다.
성경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한국인은 하느님께서 마지막 때에 당신의 특별하신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고자 일찍이 택하시고 감추어 놓으신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유대민족은 복음의 첫 번째 주자로 사용되었다. 우리 한민족은 복음의 마지막 주자로 쓰임 받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에게 부여된 구원사적 사명이다.
알이랑의 비밀; 인류 최고(最高)의 찬송가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리랑은 매우 단순한 노래다. 그러나 굉장히 큰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노래이다. 아리랑은 놀랍게도 우리 한민족의 선조들이 홍수 후 셈계의 일신신앙을 가지고 동방으로 이동할 때 험한 산과 높은 고개, 그리고 고원들을 넘어 오면서 부른 ‘찬송가’였다(창 10:21~30).
‘아리랑’에는 한국인의 원형과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아주 귀중한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아리랑’은 선민 한민족의 키워드이다.
‘아리랑’은 원래 ‘알이랑’이다.
‘알이랑’은 ‘알’과 ‘이랑’으로 구분된다. ‘알’은 ‘하느님’을 의미한다.
왜 ‘ᄋᆞᆯ’이 유일신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었을까? ‘ᄋᆞᆯ’이 수많은 생명을 낳기 때문이다. 쌀도 볏알(볍씨)에서, 과실도 씨알에서 생기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허다한 생물들이 또한 ‘알’에서 탄생한다. 그래서 ‘ᄋᆞᆯ’은 ‘모체(母體)’요, ‘근원(根源)'이요, ’시작‘과 같은 뜻을 갖는다. 따라서 창조주 ’하느님‘이라는 신명(神名)도 처음에 ’ᄋᆞᆯ‘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만물의 모체이시고, 근원이시며 시작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ᄋᆞᆯ’앞에 ‘한’이라는 관형사를 붙이고, ‘ᄋᆞᆯ’ 뒤에 ‘님’이라는 존칭명사를 붙여서 ‘한ᄋᆞᆯ님’이라고 했다. 그것이 한ᄋᆞᆯ님→하ᄂᆞᆯ님→하늘님→하느님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ᄋᆞᆯ’은 ‘하느님’이다.
이 ‘알’이라는 단어는 창조주 하느님을 뜻하는 일종의 원형 언어로서 노아에 의해 홍수 이후의 세대로 전승되었다. 유대인의 ‘엘(EL)', 아랍인의 ’알아(알라)‘는 바로 이 ’ᄋᆞᆯ‘에서 파생된 말이다.
‘이랑’은 ‘~와 함께’라는 토씨로서(언어학자들은 ‘토씨’는 6천년 이상 간다고 한다) 영어의 ‘With'이다. 따라서 ’ᄋᆞᆯ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말이다.
그러면 ‘고개를 넘어 간다’는 무슨 뜻일까? 그것은 고대 한민족이 이란 고원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넘어, 천산 산맥과 알타이 산맥을 넘어갔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문맥상 “하느님을 섬기는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이 된다.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을 불신, 배척하는 무리들을 의미한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 대한 악담이나 저주가 결코 아니다. 발병이 나서라도 더 떠나가지 못하고 나의 품으로 되돌아오라는 회귀원망의 연정을 노래한 것이다. 즉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버린 자들을 향해 다시 순수한 하느님 신앙으로 되돌아 올 것을 사랑으로 촉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겨레의 노래 ‘알이랑’에는 ‘하느님을 위한 열정’과 ‘잃은 자를 위한 연민’이 함께 깊이 배어 있다.
아리랑은 ‘찬송가’이다. 그래서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으뜸가는 코드이다. 알이랑 민족 한국인은 하느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셈족의 거룩한 백성인 것이다.
성민(聖民) 한국이여, 깨어나라!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온 자손’은 하느님의 선택받은 종족이다. ‘에벨의 온 자손’이란 그의 두 아들 ‘벨렉 자손’과 ‘욕단 자손’을 말한다. 따라서 천손민족은 ‘벨렉계 선민’과 ‘욕단계 선민’ 두 계열의 백성이 존재한다. ‘벨렉계 선민’이 아시아 서쪽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요, ‘욕단계 선민’이 아시아 동쪽의 ‘알이랑 민족’ 한국인이다.
“알이랑 민족”의 ‘알이랑’이라는 말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으로서, “알이랑 민족”은 말 자체가 그들이 ‘천손민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알이랑 민족”이라는 말은 개념상 이스라엘의 “언약 백성”과 상응하는 말로서 천손민족인 우리 한국인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알려주는 아주 소중한 말이다. 아시아 서쪽에 “언약 백성”이 있다면 아시아 동쪽엔 “알이랑 민족”이 있다.
“언약 백성”은 하느님이 이스라엘 국가와 언약을 맺으셨던 시내산에서 시작되지만, “알이랑 민족”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 알아랏 산까지 소급되는 원초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노아의 유일신 신앙을 홍수 후에 끝까지 계승한 족속이 알이랑 고개를 넘어 백두산까지 천동(遷動)했던 한국인의 조상 욕단의 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배달겨레는 처음부터 ‘알이랑’ 즉,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하느님의 백성이다. 그리하여 나라꽃도 무궁화, 즉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이다. 샤론의 장미는 에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꽃이다. ’무궁화의 나라‘라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와 하느님 앞에서 특별한 사명과 위치를 지닌 선택된 나라이다. 또 하나의 선민 우리 겨레의 시대적, 역사적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지막 세기의 마지막 주자이다. 여호와 하느님은 벨렉계 선민 유대민족을 복음의 첫 번째 주자로 사용하셨다. 그러나 욕단계 선민 한민족은 복음의 마지막 주자로 쓰실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하늘나라의 모형이 있고, 백의민족으로 살아 온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모습이 남아 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이 영예로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자기들이 마지막 대추수를 위해 쓰임 받아야 할 천손민족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우리 겨레가 천손민조임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동안 이민족으로부터 수난 당하며 살았던 근본적 원인이 여기에 있다.
한국인은 이제 스스로를 자각하고 “우리는 욕단계 선민, 알이랑 민족이다!”라고 열방을 향해 당당히 선포해야 한다. 알이랑 민족 한국인은 천손민족으로 태어난 자긍심을 이제 회복하고,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특별한 섭리와 소명에 순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우리 겨레는 앞으로도 민족적 수난이 계속 될 것이다.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고서는 강한 민족이 될 수 없다.
이제 한국인은 한국의 역사를 신앙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한국사의 토양에 뿌리박은 한국 기독교를 발견, 육성해야 하낟. 우리 민족의 하느님에 대한 개념도 유일신 신앙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한민족은 선택된 백성이므로 한국 정신과 기독교 정신과의 일체화에서만 살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오실 목자장이신 주님께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시려고 반드시 동방으로 오실 것이다. 그는 동방에 감추어 두신 자기 백성을 일으켜 세우시고, 말일에 마지막 대추수를 위해 그들을 귀하게 쓰실 것이다. 세 번째 천년에 하느님께서 열방 중에서 행하실 가장 큰 일이 바로 이것이다. 새 천년 벽두에 알이랑 민족 회복 운동은 시작되었다.
역사는 하느님의 경륜과 섭리 안에서 엮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그들을 위한 이 놀라운 계시를 깨닫고 민족적으로 받아야 할 말일의 복을 공손하게 받아들이도록 마음의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셈에게 주어진 축복은 한국 백성을 위한 존귀한 유산이며, 장차 올 새로운 세계에서 한반도는 아주 귀중한 장소가 될 것이다.
깨어라, 알이랑 민족!
일어나라, 한국 교회!
- 유석근,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민족] 중에서 발췌